아침에 긁적거리는...
부지런하면 배우는 것은 나보다 부지런한 사람을 발견한다.
발견은 눈을 가져야 보이는 것이다. 보인다고 알고 깨닫는 것은 아니다. 발견하는 눈이란 마음의 경계에서 의지라는 영역의 자극을 통해서 일어난다.
부지런하기 위해 자기 자신이 애쓴다.
의지를 발동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예를 들어 운동을 위해 새벽에 일어나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또는 정한 시간에 운동과 식단을 조절하는 다이어트가 무척 힘든 것이 의지를 발동해야 하는 자신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 훈련이나 이를 통해 실력을 쌓는 것들이 부지런함을 꼭 필요로 한다.
그지 같은 이 세상이 그 과정을 빼도 되거나 건너뛰거나 부적절한 방법으로 그 결과를 취하려는 욕망에 빠져 이 모양 아닌가 싶다.
아무튼 그런 부지런함을 경험하면 그 힘든 과정에 빠져 주위를 돌아볼 겨를이 없거나 더 부지런한 사람을 발견하는 것이다. 나처럼 적당히 부지런한 척하는 사람은 늘 내 앞에 그런 사람이 보인다는 것이다.
전자는 자기 싸움에 허덕이면서 언제든 포기라는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힘든 시간을 보낸다. 자기가 정한 선을 넘나들면서 부지런함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부지런한 사람을 발견하는 것은 자기 싸움의 방향이 어딘지에 대해 알고 싶어 하고 그들처럼 되고 싶거나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는 지에 대해 관심이 발동하는 찰나이다.
살다보니 나와 같은 경험을 하고 나보다 앞선 이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들의 실패나 성공담은 정말 중요한 자원이다. 그렇지만 지식적으로 아는 것으로는 결코 아무런 변화를 끌어내지 못한다. 물론 지식을 빼버린 부지런함도 아무런 변화보다 더한 잘못된 방향을 향할 것이다.
아는 것에 부지런함을 더하고 부지런함에 알아 가는 과정을 더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의미에서 부지런한 일상은 나 보다 더 부지런한 사람을 보게 하고 내 마음의 영역을 간지럽게 한다.
지식에 덕을
지식에 부지런함을 더한다.
부지런함에 다시 올바른 지식을 더한다.
부지런함은 자기애의 확장이 아닌 타인에 대한 시선으로 비춘다.
πάντα πᾶσιν ἀρέσκ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