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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본문 설명을 앞서 배경을 말씀드리면 출애굽한 백성들은 14장에서 홍해를 건너는 경험을 합니다. 그리고 15장에서 출애굽의 큰 구원을 노래합니다. 출애굽기 15:1 “1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뿐만 아니라 아론의 누이이자 선지자 미리암 역시 출애굽기 15:21 “21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  이렇게 여호와를 찬송합니다. ‌하지만 22절부터 상황은 반전됩니다. 22절부터 18:27절까지 길게 광야에서의 시험을 다루는 시작인데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  출애굽기 15:22 “22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광야에 들어섰고 사흘길 즉 3일이나 걸었지만 물을 얻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물은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물이 없는 상황 즉 죽음 앞에선 모두는 이런 상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어떤 것, 또는 그 사람을 향해 원망을 합니다. 24절에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이 사건이 마라라고 이름 부르는 지역에서 있었던 먹지 못할 물에 나무를 던져 물을 먹을 수 있도록 한 사건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표현이 나오는데 25절에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라는 말씀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시험으로 규정하셨습니다.  시편 26:2 “2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양심을 단련하소서”  시험에 대한 3가지 동사가 한 번에 나오는 예인데, 살핀다. 시험한다. 단련한다가 같은 의미상 나열 된 것이죠. 우리는 시험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죠. 그런데 본문에서 보면 물이 없는 광야의 3일은 죽음과 직결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 백성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얼마전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기적인 홍해를 가르시고 백성이 건널 뿐만 아니라 뒤 쫓아 오든 애굽의 병거가 물에 수장되는 엄청난 기적을 맛 본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  따라서 충분히 불평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럴 때 하나님을 본다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직 이들이 시내산에 도착하여 모세에게 율법을 주시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은 무엇일가요?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백성에게 보여주신 사건들 즉 표적입니다. 그러니까 백성들은 이러한 기적 즉 표적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이러하신 분'이라는  충분한 경험적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것만큼 확실한 것이 어디있습니까? 보여주시면서 경험까지 한 것입니다. 바로 예수께서 그러하신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시고 경험하게한 사건이 ‘오병이어 기적'이며 가리키는 방향을 나타내는 표적입니다. 

‌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그들을 위하여 보여주신 일련의 사건은 ‘여호와 하나님의 어떠하심'이 시험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표현해보겠습니다. ‘봤잖아. 그런데 물이 없다고 불평을 한다고 물론 3일이나 물을 마시지 못해으니 그럴수 있어, 잘 모르는 아이들의 투정을 보고 지쳐가는 옆에 사람들을 본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지 그런데 이런 식으로 해야 돼, 내가 보여준건 뭐가 되지, 이렇게 말하면 좋잖아,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은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그리고 홍해에서 ‘이렇게 하신 분'이시지'그래서 이번에도 우리를 구원하실꺼야’라고 말하면 얼마나 좋겠니.’ 입니다. 

  ‌그런 시험 두 번째가 16장 오늘 본문의 사건입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은 엘림이라는 곳에서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 곳에서 쉼을 주십니다. 그런데 16장의 불평은 15장의 짧은 불평에 대한 기사와 달리 매우 길게 그리고 자세하게 소개를 합니다.  홍해를 건너 3일만에 벌어진 갈증과 달리 시간은 꽤 흘렀습니다. ‘ 엘림을 떠나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라고 말합니다. 애굽에서는 두 달하고도 보름이 지났습니다. 이때 이들은 ‘원망합니다 앞선 15장과 같은 단어를 사용하면서 2절에서 두 번 반복을 합니다. 그러니까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라고 해석하면 됩니다.  마라에서의 불평이 백성이라고 했다면 여기에는 온 회중이라고 표현함으로 불평의 강도가 지속적으로 더 구체적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15장이 원망이 수동태의 표현이라면 16장은 능동태로 분명한 차이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자세하게 살펴보면, 15장과 달리 애굽의 삶과 지금을 비교로 말합니다. 출애굽기 16:3 “3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3일간의 물을 먹지 못해서 자연스러운 고통에 대한 원망과 달리 애굽에서의 비교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두 불평에 대해 우리는 잘 구분하지 않습니다. 대충 ‘그럴수 있는 거 아닌가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일상의 ‘불평'이 어디에서 출발하고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지를 볼 기회를 오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  이런 불평에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리십니다. 4절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입니다.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앞으로 살필 요한복음의 6장 오병이어 사건에 대한 예수님의 해석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양식'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너희를 위하여'입니다. 요한복음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표현하죠.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은 일용할 양식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얻은 것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께서 4절 후반에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만나와 하나님의 율법 준행은 어떻게 연결되나요?  우리가 오해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명문화하신 율법을 근거로 요구하고 그렇게 옭아 매는 딱딱한 법조문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요한복음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지키는 명문화된 계명의 본질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사람을 살리는 일과 대치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에 속박된 유대인들의 시선은 그 너머의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알지 못했습니다. 16장 후반부의 안식일이 만나 사건과 연결됩니다.

  ‌지금도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스스로 몇가지를 정하고 이것을 지키는 것으로 자신의 의를 삼으려 합니다. 어떤 경우는 그렇게 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이듯, 예수께서 이땅에 오셔서 제자들과 보여주신 관계입니다. 오병이어 사건을 통해 예수께서는 자신과 아버지의 관계를 묶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믿음 즉 제자를 하나로 묶습니다. 이것을 율법이라하지 않습니다. 여기 본문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미 15장부터 말씀하신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신' 것은 출애굽 과정을 통하여 보여주신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백성들이 모두 알기 때문입니다. 

  ‌커져가는 계속된 원망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만나를 주시고 그리고 거두는 방식을 말씀하십니다. 훈련이죠. 어린 아이에게 눈 높이에 맞춰 교육하는 것이죠. 마치 과자를 사주고 ‘엄마 하나만 줘' 하든지 ‘친구도 하나 줄래’하면서 나누는 것을 교육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입니다.  ‌특히 여섯째 날은 갑절을 거두게 하십니다. 왜 입니까? 6절에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에 집중됩니다. 엄마와 친구들에게 나눠준 이유로 아이는 칭찬과 더불어 다시 과자를 받는 것은 ‘과자를 얻음'을 통해 부모가 더 큰 것을 주신 분이라는 과정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못된 원망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자녀를 가르치듯 자세하게 모세를 통하여 계속해서 말씀하시고 친절하게 하나 하나를 설명하듯 하시는 것입니다. 나눠주고 부족해 불평하는 아이에게 ‘엄마가 들었다', ‘알았어 나눠주고 나니 많이 없구나' 달래며 ‘그래도 친구랑 같이 먹으니 좋잖아'라고 설명하는데 아이 마음에는 ‘원망'이 아직 가시지 않았죠. 그것을 바꾸는 과정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시 10절 백성들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나더라'  그들에게 메추라기 즉 고기를 먹이시기 전에, 그들이 처음 보고 먹을 신기한 만나가 나타나기 전에 여호와의 영광이 먼저 등장합니다.  요한은 오병이어 사건에 앞서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축사하는 장면은 이러한 영광과 대견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그렇게 이들은 메추라기를 그리고 만나를 저녁과 아침에 거두게 됩니다. 출애굽기 16:18 “18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 오병이어 기적 후 남은 것은 12광주리가 되었다는 사실은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반영한 것입니다. 나눠주고 빈 봉지를 보는 아이는 빼았긴 것 같은 상실을 경험하죠. 그럴 때 다시 주어진 새것의 과자는 ‘아이 마음에 ‘ 부족함이 없음을 갖게 하는 것이죠.  그래서 자녀 여러분에께 특별한 의미의 날이 아니어도 어떤 선물들은 부족할 수밖에 없는 세상의 만족이 아니라 부모로써 주고 싶고 ‘부족함 없는' 마음을 전달하고 싶은 것이었음을 알아 주었으면 하는 바랍입니다'

‌  그런데도 불구하고 20절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무슨 말씀인가요? 당일에 필요한 것 외에 많이 거둔 사람들은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까? 애굽과 비교한 ‘불평'은  ‘욕심'과 같은 뿌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부족함 없이 주시는 만나도 인간의 마음에서 생겨나는 불평과 욕심을 채우지 못하는 것이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것입니다. 내일도 주신다는 믿음이 아니라 어쩌면 내일은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 내 힘으로 미래를 준비하려는 생각 뒷편에 자리 잡은 ‘불안 심리' 역시 같은 뿌리에서 나오는 열매입니다.  그 결과는 계속해서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는 ‘그들에게 노하니라' 이것이 이스라엘이라는 백성의 본 모습입니다.  

  ‌비워지는 봉지를 보는 아이는 불안합니다. 그래서 이런 아이에게는 부모가 미리 말합니다. 이따가 또 사줄께 그러니 친구에서 하나 주라고 말이죠.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주시면서 한 편으로  명령하십니다. ‘거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시험의 기준입니다. 이는 창세기에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하는 중앙의 나무 열매를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그런 나무를 중앙에 두셨냐'고 불평하지만 그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만족하게 주신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자기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엄청나게 힘들고 무거운 것을 요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느끼는 엄청나게 힘들고 무거운 것을 천로역정이라는 우화에서는 율법이 그렇게 한다고 말합니다. 

  ‌아직 율법 즉 시내산에서 명문화 된 계명이 주어지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욕구에 준하는 불평을 들으시고 물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고기와 일용할 양식에 대한 불평도 들으시고 메추라기와 만나를 일용할 양식으로 주십니다. 그럼에도 더 갖고자 하는 백성들이나 지금 우리의 모습은 ‘만족'이라는 매우 깊지만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독을 마음에 하나씩 품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24절에 보면 이상하게 여섯째 날은 안식일을 준비하며 갑절을 담았지만 썩거나 냄새나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27절에 보니 ‘거두러 나갔다가'하는 말씀을 보니 여전히 ‘혹시나'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16:28 “2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어느 때까지 너희가 내 계명과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려느냐”  이러한 상황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게 만나를 먹이신 이유는 32절에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 광야에서 너희에게 먹인 양식을 그들에게 보이기 위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0년 동안 만나를 먹인 사건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그에 반하여 불만을 품고 거역한 모습으로 성경에는 다양하게 등장합니다. 일종의 반면교사입니다. 그렇게 먹였는데 광야에서 죽었다. 그렇게 불순종하면 안 된다는 식입니다. ‌그리고 출애굽의 만나의 사건은 요한복음의 오병이어와 연결이 됩니다. 하지만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백성의 불평과 불만은 더 커져 갑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광야를 걷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물을 공급하시고 매일의 양식을 공급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어질 불만 속에서는 모세도 넘어집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십니다. 왜 그렇게 하시는가 하면 내 백성 삼으신 ‘왕이신 하나님'의 자비하심 때문입니다.  35절에 보니 만나로 먹이시는 기적은  가나안 접경에 이르기까지 40년을 먹이셨다고 기록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경험 했음에도 불구하고 원망은 사라지지 않았고 여호수아, 갈렙을 제외한 1세대 백성은 광야에서 가나안을 맛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계속되는 원망이 읽혀지십니까?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나를 40년동안 먹이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보이십니까? 예수께서 자신을 따른 무리에게 배고픔을 해결하고 고쳐주심 때문이 아니라 생명과 연결된 자신이야 말로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 자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특히 구약에서 이러한 메추라기와 만나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다면 영광 자체이신 예수께서 그들에게 보여주심이야 말로 더 크고 확실한 증거입니다. 그럼에도 믿지 못한 유대인들은 광야에서 ‘내 계명과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한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의 그러하심이 이미 ‘성경의 말씀 즉 텍스트'에 드러나 있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이 성경을 통해 예수의 ‘그러하심'을 분명하게 맛 볼 수 있습니다. 어떤분들은 그보다 더 깊이 경험한 분들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불평이 우리 속에서 올라오는 것을 경험하지 않습니까? 지난 주 오병이어의 사건은 출(15)장부터 시작하는 원망 속에서도 하나님의 ‘어떠하심' 즉 인도하여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보여 주십니다. ‌요즘 말에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줄 아는 이스라엘 백성은 ‘아 불평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구나 그래 나를 잘 살던 애굽에서 이끌고 나오셨으니 이 정도는 충분히 요구하고 누릴 수 있지'라고 아주 잘못된 태도입니다. 성경은 많은 곳에서 하나님께서 각자의 ‘마음'을 감찰하신다고 기록합니다. 즉 원망이라는 뿌리에서 출발하여 때론 어쩔 수 없는 상황인지 아니면 불평인지 하나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그러니 그분의 아들이신 예수께서는 빌립을 아시고 ‘시험하셨다'는 말씀은 오늘 본문의 ‘시험'과 일맥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함께 예배한다고 해서, 매일같이 만나와 매추라기를 먹고 맛본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의 마음 깊은 곳은 여전히 죄의 영향 아래서 불평의 쓴 뿌리에 불안과 세상의 염려를 공급 받으며 만족함이 없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받는 평화 즉 평안함은 세상의 어떤 것들을 가지고 채우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부터 받고 채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알고 예수로 채울 때 비로소 만족함으로 나타납니다. 쉬운 표현으로 ‘은혜'를 받았다는 표현이고 요한복음은 ‘생명이 있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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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설교자들이 요한복음을 살피면서 크게 잘못된 것 중 하나가 기적 그 자체와 당사자의 믿음을 부각하는 해석입니다. 지난 시간에 아이를 둔 왕의 신하 그리고 오늘 본문의 38년된 병자 사건이 대표적으로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 현실에 필요한 내용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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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17
    Dec 2023
    12:47

    20231008 주일설교(요한복음 4:43-54)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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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17
    Dec 2023
    12:45

    20231001 주일설교(창 32:1-13) 과거 없는 미래는 없다. (추석 가족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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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17
    Dec 2023
    12:39

    20230924 주일설교(요한복음 4:16-42) 사마리아 여인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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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17
    Sep 2023
    21:54

    20230917 주일설교(요한복음 4:1-15) 사마리아 여인을 만난 예수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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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10
    Sep 2023
    15:19

    20230910 주일설교(디모데후서 3:1-15) 너희는 이것을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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