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준비하며

교회를 준비하며

교회를 준비하며

교회는 공동체! 예배는 공동체?

교회를 준비하며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은 공동체성이다.

 

요즘은 다양성을 넘어서 각자의 생각, 행동, 표현(행동과 표현을 굳이 나눈다)등

그 자체가 유니크한 시대를 살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나 역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시대이다.

 

그런데 이런 사고는 꼭 오늘만 더한 것은 아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그때에 "또 이르시되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 더 받으리니"(막4:24, 마7:2)고 하셨다. 결국 이런 사고방식의 극대화가 오늘이 아닌가 싶다. 

 

이런 와중에 교회는 공동체가 각자의 다양성만을 담을 수는 없다. 초대교회에도 구제하는 문제로 인한 여인들의 갈등에 집사를 세웠다. 일종의 조직이 만들어졌다. 물론 공동체성이 조직을 통해서 세워지는 것은 전부가 아니다. 그렇다면 공동체가 세워지려면 어찌해야 하는지는 분명하다.

 

각자의 다양성을 통일성이라는 그긋에 어떻게 담을 수 있는가?

이는 곳 예배라는 뼈대를 중심으로 붙여가야 한다. 신앙의 언어로 예배는 은혜의 방편이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방편이 몇 있는데 그중 먼저가 예배이다. 예배를 통해서 은혜를 받는다. 얻는다는 표현을 하는데 이를 신앙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렇지만 성경에서 보면 모임은 다양한 형식을 갖는다.

 

잘 아는 그림 하나가 최후의 만찬과 같은 장면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가운데 다가오는 아이의 모습도 그렇다. 오늘 우리 교회는 일관된 형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규정화되고 의식화된 상태에 있다. 그렇다고 이런 것을 무시하고 마음 가는대로 할 수는 없다. 이것이 일종의 통일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형식화에 빠지면 의도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 처음에야 그렇지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형식화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교회의 화두가 예배의 회복이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  - 왜 말이 길어지고 설명조가 되나 -

 

예배는 공동체성을 세워가는 뼈대이다. 

그런데 형식, 의식화로 인한 그 기능이 약화되었다.

예배의 영적인 기능만을 추구하다 보니(은혜 받는다) 함께하는 예배 공동체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아이들과 함께 드리지 않는 예배, 가족이 함께 드리지 않는 예배나 그런 교회의 구조적인 상황이 그렇다. 뼈대를 세우기 위해서는 영양의 상태를 따지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함께 강조되는 것이 자세이며 근육을 강화하는 훈련이다.  후자의 둘을 무시하면 결국 시간이 지나면 굽어진다. 

 

함께 한다는 의미에 '공동'은 말 그대로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함께 고민을 하기도 하고 은혜를 받기도 하고 할 것이고

각자의 세대는 그 나름대로 해석해서 받아 먹을 것이다.